엣세이

헤르만헤세 데미안 리뷰 해석 완벽 분석! 데미안 독후감.

jjthistory 2025. 2. 10. 14:41

드디어 그 소설.. 데미안

해석을 해보려고 한다.

다들 어렸을 때 읽어봤을 것이다.

청소년 권장도서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이 읽고 이해하면 참 좋은 내용이긴 하다..

“이해할 경우..”

근데.. 이거 참 이해하기가 너무나도 난해한 소설이다.

심리학 정신과학에 관심 많은 나도 힘들게 읽었는데

하물며 이걸 잘 이해할 청소년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사실 성인도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다.

더군다나 이 소설은 자칫 오해할 여지도 도처에 산재해 있다.

이게 당대의 문학 거장 헤르만헤세가 또 당대의 심리학 거장 “칼 융” 에게 심리상담을 받다가 그 내용이 떠올라서 쓴 소설이라 그런 것이다.

무려 두 레전드의 지식을 기껏해야 중딩인 데미안이 다 알고 가르쳐주는거라서 어려운 것이다.

등장인물만 청소년이지 내용은 엄청난 철학이다 ㅋㅋ

근데 이거 제대로 된 리뷰도 잘 없음

이거 리뷰해주는 분들은 다들 배우신 분들인데.

배우신 분들이 차마 악을 숭배하라 악을 행하라

교리에 따르지 말라. 이런 말을 할 수가 없기때문도 있을것이고

내용 이해도 잘 안돼서도 있을 것이고.

이번 리뷰를 계기로 데미안 이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싶다.

먼저 줄거리부터 간략히

부잣집 아들내미 싱클레어

프란츠 크로머에게 괴롭힘 당하다가

신비로운 소년 데미안을 만나서 괴롭힘에서 벗어나게 됨.

데미안은 똑똑하고 배울게 많은 친구였는데, 그에게서

내 안의 목소리를 따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싱클레어가 택한 내 마음대로 하기 1탄은

방탕하게 살기였다..

술 담배 공부 안하기 등등

근데 그건 뭔가 나사가 빠진 내 맘대로 하기.

그저 목적없이 쾌락만 좇는 것이었음

그러다가 싱클레어에게 변화의 바람이 불게 되는데..

그가 베아트리체라는 가상의 여성과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을 품게 됨.

그래서 그에 걸맞는 사람이 되고자 방황하는 생활을 접음.

그러던 중 피스토리우스라는 연주가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피스토리우스도 내면의 목소리를 잘 들을 줄 아는 놈이었음.

서로 불멍하면서 내면의 소리 듣기 시간을 가짐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에게 좋은 스승이 되줌.

근데 피스토리우스는 말만 앞설뿐이었지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는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싱클레어가 그에게

“골동품같은 말만 하지마!” 하고 일갈한다.

요 과정으로 싱클래어는 한층 더 성장하게 된다.

피스토리우스의 말뿐인 조언에 반박할 줄 아는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자” 가 되어버림.

피스토리우스를 떠나고 또다른 스승이 필요해질 찰나데미안을 오랜만에 만나게 됨.

그리고 데미안의 집에 갔는데 이게 웬걸. 사랑에 빠졌던 가상의 여인 베아트리체는 알고보니 데미안의 엄마“에바부인” 이었다.

내면의 목소리를 행동하는 자. 싱클레어는

친구의 엄마라도 과감히 그대로 직진.

친구엄마에게 사랑에 빠짐.

그러다가 에바부인도 그의 사랑을 승낙해줌.

키스 & 허그 해준다.

(데미안도 우리엄마와의 사랑 ㅇㅋ 해줌)

그러다가 전쟁이 터짐

싱클레어는 부상을 입고 군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마지막으로 데미안을 만난다.

그러다가 결국 싱클레어는 예전 크로머에게 괴롭힘 당하던 아이에서 데미안만큼의 레벨로 성장했음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요약하니까 내용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진짜 과장 없이 이거다 ㅋㅋ

이제부터 해석 타임

데미안의 핵심 주제

1.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2. 그게 설사 “악” 이라고 규정되는 거여도 행하라.

이다.

어린시절 싱클레어

프란츠 크로머에게 괴롭힘 당함

이게 싱클레어는 “선”의 영역만 갖고있었기 때문이다.

악도 겸비했어야 함.

근데 그 악이 말만 악이지 사실은 본인이 정하기 나름이다.

아벨을 죽인 카인도 누군가에게는 살인자로 누군가에게는 용기있는 자로 규정되어 질 수 있다.

싱클레어가 크로머에게 하지말라고 소리쳤어도.조그마한 반항이라도 했어도 데미안의 도움은 필요없을 수 있었음.

소리지르기 반항하기 이런건 소위 말해서 “악”이라 규정지어지는 거지만 때에 따라서 “선” 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해야된다.

그런데 사회에서는 선 악을 딱 규정해서 가르침.

거짓말은 무조건 안좋다. 등등

데미안은 거기에 현혹되지말고 자기내면의 소리를 믿고 항상 비판적으로 사고하라고 일러줌.

예를들어서, 카인은 사실 용기있는 자다.

신의 가르침을 맹목적으로 믿지 말라.

즉, 생각없이 남이 하는대로 하지 말라는 얘기다.

이걸 현실로 적용해보면

남들 하는대로 대학교 몇살 취업 몇살 결혼 몇살 하지말라는 얘기다 ㅎㅎ

이제 내 맘대로 살려고 마음먹은 싱클레어.

술 담배 하고 놀기 한다.

근데 이것도 병맛인게

진짜 싱클레어가 하고 싶어서 그런게 아니라

남들이 방탕하게 살고싶을 때 으레 하는 것들을 따라한 것뿐이다.

이것도 결국 뇌 없이 남들 따라하기일 뿐이다.

그렇지만 데미안 왈. 이게 뇌없이 질서에 순응하기보다는 낫댄다. 결국에는 청산해야 되는 거지만.

사실 다들 이런 방황하는 과정이 성숙에 앞서서 꼭 필요하긴 하다. 방황없이 진정한 깨달음은 얻기 힘듦.

방황하는 사람들은 너무 자책할 필요 없음.

그러다가 싱클레어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싶어함.

“선”은 누가 가라고 시켜서 가는 게 아니다.

자기가 진짜 하고싶어서 자발적으로 우러나와야 함.

그러면 알아서 건실해진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아브락사스는 선의 신이자 악의 신이다.

잘못 이해하면

그럼 기독교 교리에 반하는 소설인건가?

사탄 숭배인건가? 이단인가?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다.

그 뜻이 아니다.

선과 악의 면을 두루두루 갖추고

내면의 목소리가 그것을 행하라고 할 때 주저하지 말고 해야된단 얘기다.

그리고 또 이렇게 이해하면 안됨.

“아 악을 이해해야지 진정한 선이 될 수 있구나!”

“악을 알아야 대처가능하고 선이 될수 있다”

악을 무슨 치료하고 진단해야되는 병처럼 받아들임.

최종 목표를 선이라고 생각함.

항상 선이 옳고 악이 그르다는 관념에서 못벗어남.

악을 받아들이고 숭배하는걸 도저히 용납 못해버린 결과다.

이 또한 헤르만헤세가 경계한 행동인데.

이렇게 받아들이면 소설을 통째로 이해 못한거다.

만약 싱클레어가 피스토리우스와 얘기할때

사이가 민망해질 걸 걱정해서

“그건 골동품이야!” 일갈 안했다면?

싱클레어도 전혀 성장 없이 말뿐인 놈으로만 살았을 수 있음.

상대방 의견에 비아냥거리는건

악이 깃들여 있는 행동이지만(사회 규정상) 싱클레어에게는 꼭 필요한 선의 행동임(본인 입장에서)

또다른 방황하는 자 크나우어

싱클레어에게 묻는다. 성욕 주체하기 힘들어요.(자위행위가 스스로 더럽히는 행위 같다)

싱클레어 왈 “참지마라”

굳이 참아봤자 더 나은사람 되는거 아니다.

교리에 목매어서 자연스러운 성욕을 굳이 참을필요없다.

내가 예전에도 썼듯이 쾌락, 도파민 굳이 억제할 필요 없다.

인스타 틱톡 릴스 안본다고 더 좋은 사람 되는거 아니다.

에바부인과 사랑에 빠지는 싱클레어.

누군가에게는 금단의 사랑이지만

싱클레어는 주저없이 전진.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인 결과다.

오해하는 부분

사람들이 보통 에바부인을 사랑하는 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서 에바부인을 싱클레어 내면의 인물로 치환시켜버린다.

그의 여성스러운 자아 막 이러면서 ㅋㅋㅋ

에바부인을 사랑하는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면

이 책을 잘못 읽은거가 된다.

여기서 또 오해하면 안되는 것.

내면의 목소리가 시키면

살인 강간 해도 된다! 가아니다.

진짜진짜 내면의 목소리가 맞다면 할 수 있지만(!)

사실은 거의 항상 진짜 내면의 목소리가 아님.

예를들어 죽이고 싶은 직장 상사가 있다 치자.

근데 죽이고 싶은 이유가 있을거 아닌가?

갑질 , 언어 폭력, 따돌림 등등

그걸 하지말라고 화낸다든지 때리고 퇴사하든지 반응없이 무시한다든지 등등 다른 해결법도 많음.

원인을 해결해야지 괜히 죽일것까지는 없다.

근데 대체 내면의 소리가 뭐길래 자꾸 들으래?

남들 하는대로 살면 안됨?

데미안이 말해준다. 위기에 강하게 되고 진짜 내 삶을 살게 되고 행복하고.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제시하는 등.

나폴레옹과 부처 모세 등등들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줄 알았더랬다.

내면의 소리 듣는법

매우매우 힘들다. 아무나 하는거 아니다.

근데 다 할 수 있는거긴 함.

예를들어 전쟁과 같이 진짜 극단적인 상황에 이를때

그때는 시켜서 하는것에 다들 물음표를 띄우게 됨.

이거 내가 왜하지?

(전쟁같은 극단의 폭력은 결국 뇌 없이 사는 사람들이 이끌려다녀서 생긴 결과물이긴 함. 그래서 이럴때일수록 알을 깨고 나온자들이 열심히 기여해야한다고 강조함)

그 광경을 보고 싱클레어는 깨달음

아 인간을 내가 과소평가 했구나.

이거 내면의 목소리 듣는거 나랑 데미안 등 카인의 표식 가진 애들만 할줄 아는거였는데 사실 다 할 수 있었던거야!

또또 오해하면 안되는게

이게 지 맘대로 방탕하게만 살라는건 아니다.

그 데미안 조차도 군대에서 대위로 근무함ㅋㅋ

자유를 좋아하는 데미안도 억압이 일상적인 군대에 입대함.

즉 선과 악의 밸런스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브락사스는 악의 신이기도 하지만 선의 신이기도 하니깐.

다시한번 결론

1.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라( 그 과정이 쉽다고는 안했다.)

2. 그 목소리는 선일수도 있고 악일 수도 있다.

근데 그거 밸런스가 중요함.

뭇 성현들이 강조했던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중용이 좋다. 과유불급.

정신과학적으로도 이렇게 분석함.

딱 절반만 하라고.

보통 선이라고 일컬어지는 규정 교리 등은 사회에 득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사회를 통치하기 위한 수단인 셈.

개인의 자유와 행복은 어느정도 희생해야 됨.

악이라고 일컬어지는 행동들은 개인의 행복 쾌락에 도움되는 경우가 많음. 술,담배,음란, 나태 등

너무 선쪽으로 치우치면 본인이 고달파지고 우울증 생기기 십상이다.

싫은일 거절도 못하고 희생만 하고 공은 남이 가로채고 등등

너무 악쪽으로만 가도 본인이 왕따됨.

순간마다 행복하고 편할지언정 사회에서 버려져서 결국 불행해짐.

혹은 마음에 안든다고 바로 때려버리면 감옥에서 평생 갇히게 됨.

결국에는 밸런스가 좋음.

(만약 본인이 부처 예수급 성자라면 선100% 가능)

추가적으로 다른의견들에 대한 내 견해.

데미안은 영지주의 작품이다?

영지주의 솔직히 말하면 이번에 처음 알게됨.

그런데 한 작품을 설명할 때 다른 철학이나 교리를 바탕으로 설명하는 것은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기본 설명에 첨가는 할 수 있어도. 작품은 작품으로만 이해하는 게 좋다고 생각함. 영화든 소설이든.

아무튼 아브락사스가 영지주의에서 쓰는 용어라 그런 것 같은데.

영지주의. 설명도 어렵다. 뭐 악을 부수고 어쩌고 해서 선택받는 자만이 그들만의 비법으로 구원받고 어쩌구..

얼핏 데미안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것 같지만서도.

어쨌든 이 이론을 바탕으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오류일 수 있다.

데미안은 강조하는것이 내면의 목소리.

타인이 정해준 교리따위가 아님.

내자신이 기독교를 원하면 기독교 가도 되고

영지주의 원하면 영지주의 가고

내자신이 전쟁을 원하면 전쟁 가고

봉사를 원하면 봉사 가고.

뭐든 내맴대로

영지주의가 그렇게 해야된다고 가르쳐서 영지주의 따르고 이런게 아님.

데미안에 나온 싱클레어, 데미안, 에바부인 모임에는 다양한 종류의 구도자들이 나옴.

다들 목표가 다름. 천문학자, 카발라 연구가, 톨스토이 추종자, 채식주의자, 소수종파 추종자, 요가 장려자 등등등.

서로 존중만해주고, 아무것도 공유하는 게 없었음.

데미안은 정반합의 변증법적 작품이다?

이것도 오류같다.

그렇게 선악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단계

그걸 통합해서 합으로 이룩하겠다는 것이 잘못된 접근방법임.

내맴이 선을 행하고 싶으면 선만 행해도 됨.

예를들어 천성이 그렇게 태어나 착한짓만 하며 살고싶은 사람이

"너 살면서 나쁜짓도 가끔씩 할줄 알아야된다?"

소리를 듣고 악의 행동을 일부러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걍 착하게 살고 싶으면 계속 착하게 살아도 됨.

그리고 내맘이 악만 행하고 싶으면 악을 행해도됨.

칭기즈칸 예로 들어보자.

서아시아 사람들에게 칭기즈칸 하면

지옥에서 온 악마같은 존재임.

강간 살육. 악마같은 행동이 아니라 그냥 악마 그자체다.

근데 데미안 소설에 의하면. 악의 행동만 해도 상관 없다는 것이다.

그냥 외부 침입에 무기력하게 잡아먹히는 서아시아 사람들보다는

외부의 적을 공격해서 이기는 칭기즈칸의 삶이 본인에게는 더 가치있는 삶이라는 것이다.

후세에 의해 평가가 갈릴지언정.

휴. 어려운 소설이 맞다.

해석 의견 분분하고 아리까리 함.

근데 이게 좋은 소설이라는 얘기도 된다.